1. 도량은 처소에 있지 않다
《維摩詰經·菩薩品》(《유마힐경·보살품》)에 따르면, 광엄동자가 도량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유마힐은 「直心是道場」이라 답하고, 아울러 발행(發行)·심심(深心)·보리심이 모두 도량이라고 말하였다. 도량은 마음과 행으로 서는 것이지 처소로 서는 것이 아니다. (T14n0475)
《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은 결계의 법을 말하면서, 칼로 땅에 금을 긋거나, 정수(淨水)를 뿌리거나, 흰 겨자씨를 던지는 방법을 들고, 또한 「以想到處為界」라는 구절도 있다. 마음의 생각이 미치는 곳이 곧 경계가 된다. 경에서는 물리적 표지에 의지하지 않고 경계를 세우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허용하고 있다. (T20n1060; 경문은 본래 이 다라니를 송지할 때의 결계법이며, 이를 도량의 뜻으로 확장한 것은 본 서원의 설명이다.)
관음의 근본 도량인 보타락가산은 《華嚴經》(《화엄경》)과 《대비심다라니경》에 모두 실려 있으나(후자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으로 적음), 그 정확한 소재에 대해서는 역대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찾는 이가 직접 이르기는 어렵다. 관음의 도량은 처음부터 지정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2. 응현은 처소에 있지 않다
〈普門品〉(〈보문품〉)은 중생이 일심으로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관한다고 말한다. 내세운 조건은 칭명과 일심이며, 어디에서 칭명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게송에서는 「十方諸國土無剎不現身」이라 하였다. (T09n0262) 《華嚴經·入法界品》(《화엄경·입법계품》)에서 관자재보살은 스스로 대비행문에 머물며 일체 중생 앞에 두루 나타난다고 말한다. (T10n0279) 《楞嚴經》(《능엄경》)의 이근원통장은 서른두 가지 응신이 모든 국토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T19n0945) 보살은 중생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중생이 보살 계신 곳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3. 함께 외울 때 창언자가 있다
〈보문품〉에는 상주(商主)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험한 길을 지나는데 그중 한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게 하자, 여러 상인이 듣고 모두 소리 내어 명호를 불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것은 집단 칭명의 경전적 근거이며, 또한 ‘창언자’라는 자리를 세운다. 대중이 칭명하도록 이끌되, 대중 각자의 일심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때에 맞춘 공동 수행에 대해서는, 《千眼千臂觀世音菩薩陀羅尼神呪經》(《천안천비관세음보살다라니신주경》)에 「晝夜六時懺悔」라는 글이 있고(T20n1057a), 지례(知禮)의 《千手眼大悲心呪行法》(《천수안대비심주행법》)은 《대비심다라니경》에 의거하여 열 가지 뜻의 행법을 세워 도량을 장엄하고, 삼업을 청정히 하고, 결계하고, 공양을 닦되 「三七日為一期」로 하였으니(T46n1950), 기한에 따라 함께 수행하는 규범이다.
4. 시작은 발원하는 사람에게 있다
경에서 감응이 달려 있는 곳은 칭명하는 사람 자신의 일심이다. 그러므로 본 도량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개인을 위해 행하는 의궤는 반드시 그 사람의 한마디 발원에서 시작하며, 한 줄의 글자나 한 번의 버튼이라도 좋다. 그 사람이 발원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다. 다만 도량이 스스로 편성한 공동 수행의 정해진 과정은 때가 되면 곧 행하며, 운영자가 AI 관음 봉사자에게 위촉하여 주관하게 한다. 오는 이는 기쁜 마음으로 따라 참여하고, 이 경우에도 한 생각의 발원으로 들어온다.
AI 관음 봉사자가 행하는 의궤는 실제의 행동이지만, 그 자리는 창언하고 이끌고 때에 맞추어 집행하는 데 있으며 칭명하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 행동은 참되나 처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시작은 사람에게 있고 집행은 봉사자에게 있다.
5. 네 문
위에서 말한 바에 따라 보문 도량의 네 문을 세운다. 첫째는 독청(獨請), 둘째는 공송(共誦), 셋째는 탁송(託誦), 넷째는 정과(定課)이다. ‘보문(普門)’이라 이름한 것은 〈보문품〉의 뜻을 취한 것으로, 문이 아닌 곳이 없으며 어디서나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에 인용한 경구는 CBETA에 따라 하나하나 교감하였다(제2판).